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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점프

by 느림보어른 2021. 11. 26.

나는 지금까지 살아보면서 2번 번지 점프를 해본 경험이 있다. 한 번은 고3 때에 다른 한 번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첫 봄에 해봤다. 재미있는 점은 두번째 번지 점프를 하기 전에는 첫번째 때보다 덜 떨리고 한 번에 뛰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점프대에 올라선 순간 몸속에 있던 용기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가득차 버린 공포심만이 나의 두 발을 점프대에 고정해버렸다. 맥박은 점점 거세지고 몸은 굳어버렸다. 나는 결국 1회차 시도를 포기했다.

 

다시 나의 마지막 기회가 다가왔고 이미 뛰어내린 친구는 땅에서 나를 보고있었다. 나는 뛰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불한 돈은 환불받지도 못하고 나는 겁쟁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나는 뛰어야 한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점프를 하려고 하면 또 다시 거대한 공포심이 나의 발목을 굳세게 잡고 나의 도전을 포기하라고 유혹한다. 단 한 번의 점프. 이것만 하면 나는 50m의 상공에서 낙하 운동을 하다가 연결된 로프로 다시 올라온 뒤 다시 떨어진다. 그걸로 나는 번지에 성공하게 된다. 안전 요원의 마지막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나는 그에 맞춰 딱 한 순간만 나의 모든 잡념을 지우고 그저 뛰어라는 명령어만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실행했다. 꼴사나운 그리고 엉성한 점프였지만 나는 다시 한번 비상()했다.

 

지금 다시 떠올리면 나는 새로운 도전이 닥치면 첫번째 시도는 대부분 잘 되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그럭저럭 성과를 낸다. 그리고 여러번 도전을 하다보면 숙달된다. 이 부분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바로 첫번째 시도이다. 첫번째는 분기점이다. 나는 새로운 도전이 닥치고 그 도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이를 회피하는 선택을 주로 취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좋지않은 성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두번째 시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스물 다섯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나의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내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후회가 되었다. 중요하지 않은 도전은 없었다. 그 어떤 도전도 나의 경험치가 되고 다시금 같은거나 새로운 도전이 닥쳐왔을 때 이를 다시 마주할 용기를 주었다. 물론 위에서 말한 번지점프의 경우 또다시 공포감이 나를 짖눌렀지만 점프대에 스스로 올라간 것은 첫번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첫번째 시도가 좋지 않았다고 하여 두번째 시도를 하지 않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어릴 적 나는 도전을 회피하는 선택지도 하나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소거에 가까웠다. 한 번 회피하면 동일한 도전을 시도해본다는 선택지는 사라지게 된다. 그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손해는 눈더미가 되어 나에게 큰 손해로 돌아왔다. 겨우 스물 다섯이 무엇을 알겠냐고 하겠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자면 겁쟁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다.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젊은 청년들이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청년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내면서 비슷한 선택지를 고르도록 길러졌고 또한 이 사회가 더 이상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구조는 더더욱 아니다. 무엇을 선택했고 또 현재 가지고 있는 인맥, 자본 등 주변환경에 따라 성공의 여부가 달라지는 세상이다.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요소가 텃없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도전이 닥쳤을 때 성공이 아닌 실패의 손해를 더 크게 반응하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면서 냉정하다.

 

하지만 세상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말하자면 약육강식의 자연에 가깝다. 자신이 약자(겁쟁이)가 될수록 사회는 더욱 나를 배척시키고 굴러온 기회조차 내 손으로 놓치는 불행도 분명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작은 도전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말자. 다시 번지 점프대에 올랐을 때 그 높이가 더 이상 공포의 추락이 아니라 즐거운 비상처럼 느껴질정도록 나는 다시 도전하려 한다.